꽃과 어머니/글 선형길
실개천의 밀어들이 정겨워지고 저 멀리 산그늘이 푸르러지는 오월이면 텅빈 시간의 공간 속에 앉아 편지를 쓴다 밤을 새워 풀어내던 인생사도 기억과 함께 사라진지 오래랍니다 첫사랑의 추억도 어머니의 얼굴마저도 흩어져버리고 그늘진 창밑 탁자 위에는 이름 모를 한 사람이 쓸쓸히 웃고 있습니다 누구일까, 언제일까 생일은커녕 어머니의 기일조차 알 수가 없죠 그가 어머니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붉은 꽃 두 송이를 준비한 것도 기약 못할 다음 해를 위해서랍니다 즐거웠던 축제날은 아직 며칠이나 남았죠 어머니야 그런 아들을 탓할 리가 없지만 그런 불효가 죄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요 꽃 두 송이를 웃고 계신 사진 앞에 가만히 놓고서 어머니 용서하셔요 붉게 색칠해둔 5월 8일은 아직도 멀었지만 자식들 생일이야 거른 적없는 어머니 앞에 어머니 용서하셔요 철쭉이 지고 산 그림자가 다가서는 해거름이면 굳게 닫혀버린 기억의 창고에서 조각난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지난한 아픔의 연속이랍니다 지쳐버린 아들은 그러다 잠이 들죠 저게 왜 저기에? 아침이면 그는 딴 사람이 되어 깨어나죠 암울한 눈빛은 양복 주머니에 꽂힌 붉은 꽃의 내력도 어제 다녀간 아들딸도 기억 못하죠 시들어 버린 꽃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때에야 시린 가슴은 무너져 내리지만 그 이유조차 알지 못 하죠 그리도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흔적들 종일 사진 앞에 앉아 그리워하다가도 아침이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두 사람은 언제나 첫사랑인가 봅니다 차양처럼 드리운 하늘,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오늘도 아들은 조각난 기억의 퍼즐을 찾아 헤매죠 하얀 모시 적삼에 뾰족한 버선코에도 철없이 웃던 그의 머리에도 세월은 은빛 부스러기를 남기고 흐릿한 망막위로 모내기 참을 이고 논둑길을 걷는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갑니다 어머니, 어머니 수척한 그의 얼굴위로 요양원의 하늘은 파랗게 웃고 있습니다. 2016. 4.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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